
파운드리 기업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유
미세 공정이 나노미터 단위로 좁아질수록 회로를 웨이퍼 위에 정밀하게 그려내는 작업의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ASML은 이 미세 회로를 구현할 수 있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설계·생산하는 네덜란드 기업으로, TSMC·삼성전자·인텔 같은 파운드리 기업들이 장비 인도를 몇 년씩 기다려야 할 만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최근에는 2나노 이하 공정을 겨냥한 차세대 하이 NA EUV 장비를 상용화하면서 기술 격차를 한 번 더 벌렸습니다. 다만 이 신형 장비는 도입 초기 단가가 매우 높고, 실제로 파운드리 기업들이 이 장비를 얼마나 빠르게 채택할지는 각 기업의 설비투자 계획에 달려 있어서, "장비를 만들면 무조건 팔린다"기보다는 고객사의 자본 지출 사이클에 여전히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중 반도체 갈등을 ASML 입장에서 정리해보면
ASML은 첨단 장비 수출 통제의 한가운데 있는 기업이라, 미중 갈등 뉴스가 나올 때마다 주가가 크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에서는 특정 국가로의 수출이 막히더라도 미국·유럽에 새로 짓는 팹들이 그 수요를 대체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시나리오이지 확정된 사실은 아닙니다. 새로운 팹 건설에는 수년이 걸리고, 그 사이 특정 시장으로의 수출이 막히면서 발생하는 매출 공백은 실제로 존재하는 리스크입니다.
저는 이 이슈를 볼 때, 수출 규제 헤드라인 자체보다 ASML 분기 실적에서 지역별 매출 비중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확인하는 편입니다. 특정 지역 매출이 줄어드는 동안 다른 지역 수주가 그 공백을 실제로 메우고 있는지가, 뉴스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포트폴리오에서 ASML을 얼마나 담고 있는지
저는 반도체 장비 관련 자산 중 ASML을 가장 큰 비중으로 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반도체 섹터 전체 비중의 30% 안팎을 이 한 종목에 배정하고 있는데, 이유는 EUV 장비 시장에 사실상 대안이 없다는 독점적 지위 때문입니다. 다른 반도체 장비 기업들과 달리 ASML은 특정 공정 단계를 두고 경쟁할 상대가 거의 없어서, 파운드리 경쟁에서 누가 이기든 그 결과와 무관하게 수요가 발생하는 구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만큼, 저는 단일 기업 리스크를 의식해서 두 가지는 꾸준히 확인합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지역별 매출 비중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고가 장비 특성상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 고객사들의 설비투자 계획이 지연되는지 여부입니다. 실제로 금리 인상기에는 장비 인도 일정이 뒤로 밀리며 실적 가이던스가 하향 조정된 적이 있었고, 이 경우 독점적 지위와 별개로 주가가 상당 기간 부진할 수 있다는 것도 함께 경험했습니다.